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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54

기억의 족자를 펼치다. 늦은 아점. 냉장고를 열고 기웃거리다가 '꺼내고, 닫고, 귀찮네...' 시금치 위에 김칫국에서 건더기 한술을 건져 보태고 고추장 대신 곰삭은 굴젓으로 밥을 비비는데... 돌돌 말려 내 맘 어디쯤 숨겨져 있던 기억의 족자 하나가 펼쳐진다. "멍게 비빔밥" "둔덕 평야의 청보리밭" "앞선 시인과의 행복했던 조우" 그리고... 그 밤 바닷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아무것도 건네지 못했다. 2021. 3. 30.
간절하다는 지금도, 무엇으로 하여 망각으로 침잠 되는가? 꿈에 번암 작은 외할아버님을 뵈었다. 뜻밖의 조우(遭遇)가 반갑기를 앞서 당황스럽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에서 의도적으로 억제된 기억들이 꿈속에서 다시 등장한다고 주장했는데, 내 오늘의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기에, 그분의 기억을 잠가 놓고 있었을까? 내 지금은, 또 다른 무엇으로 하여 무의식의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 되고 있을까? 2021. 3. 28.
공존 저녁 무렵의 천변. 오늘은 아직 성당 첨탑 언저리에 걸렸는데 내일은 어느새 이만큼 와 하늘 정수리에 박혀 있다. 춘분이 지났으니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작은, 짧아진다는 밤이 낮의 뒤에 숨어 공존하고 있는가보다. 같은 하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퇴색한 갈대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새순이 겨울의 마른 가지 끝에 여린 손을 내밀고 있듯... 산다는 건, 그렇게 서로가 어깨를 부비는 것. 2021. 3. 23.
꿀 같은 술, 젖 같은 해장국. 볼일을 마치고 귀가하며 받은 오랜 친구들의 술청. 행선지가 같은 방향이니 기다리던 친구들을 태워 함께 이동 하는데... "햐, 이 차가 굴러가네? 스틱, 진짜 오랜만에 본다." '이런 건 찍어 줘야지!' 폰을 꺼내는 나를 보고 순간 얼음땡이 된 친구. 입에 작크를 채우고 '주기도문' 묵상 모드로 변신한다. ㅋㅋㅋㅋ 근래 보기 드문 우리 아자씨(실제는 총각임) 거실에 개처럼 쓰러져 잠든 내게 출근하는 아내가 '툭' 던지는 말. "국 끓여 놨으니 자셔요"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다가 아점 챙겨 먹으러 부엌을 기웃거리니 "북어 해장국"이다. "술국" "해장국" 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말했더라면, 감동의 크기를 혜량할 수 없었을 텐데... "국 끓여 놨어요" 삼십 년 만에 듣는 그 소리. "내 버려두거라, .. 2021. 3. 20.
선택과 타협 주문한 풍경이 왔습니다. 추의 무게가 제법 나가니 웬만한 바람에는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 물고기의 동판에 시간의 녹이 슬면 참 보기 좋을 텐데 ... 그러기에는 태풍이 올 때나 바람을 그리겠고 " "시간이 익은 깊이를 기다릴 것이냐, 바람이 그리는 지금을 마주할 것이냐" 제 선택은 지금. 추에서 늘어진 무거운 쇠줄과 동판의 고기를 떼어내고, 명주 실과 오려낸 플라스틱 고기를 달았습니다. 선택과 타협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각자의 몫입니다. 무엇이 나를 간사하게 하는가…. 다이소에서 처음 구매한 원통 막대형의 스틸 바람종, 대나무 바람종. 그 후 온라인으로 구매한 일본제 유리 바람종과 허접한 중국제 놋쇠 방울 바람종. 그리고 동생이 보내온 사각 blog.daum.net 2021. 3. 18.
오늘의 마지막 불덩이를 남겨두고. 일 보러 집 나선 길에 한 30분 멈춰 섰던 용암 저수지. 오전 내 진하게 내린 커피 여섯 잔을 먹고 11시쯤 아점 후 식모 커피 한 잔까지 보탰으니, 커피를 더 보태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땅하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라떼를 시켜보기는 처음. 두 대의 담배. 몇 곡의 노래. 몇 토막의 생각. 서산마루로 내려선 오늘의 마지막 불덩이를 남겨두고 귀가. 2021. 3. 17.
꼰대들의 함성. 마빈 헤글러의 사망 소식. , 와 함께 중량급 복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 김기수, 홍수환, 유재두, 염동균, 박찬희, 김성준, 김상현, 김태식, 김철호, 김환진, 장정구, 박종팔, 유명우.... 김기수 선수를 제외하고 유명우 선수까지, 가슴 콩닥이며 브라운관 앞에 마주하던. 지금이야 각종 프로 격투기에 밀려 예전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지만, 동네 다방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순간순간 지르던 환호와 한숨과 심판과 상대 선수를 향해 던지던 육두문자. 유일하게 찻값을 선불로 지불하던 날. "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 광장으로, 비어홀로 모여 지르던 2002년의 함성. 앞선 꼰대들의 열정의 피가 흘러 닿았음을 알까? 이렇게 또 한 시대가 갔다. ▶◀ 마빈 헤글러 사망 / 바람 그리기 마빈 헤글러 Marvin.. 2021. 3. 16.
인연도 깨어 있는 이의 몫. 정리되지 않은 화단. 손 가지 않은 겨울의 외면도 아랑곳없이 돋아난 새순. 새순이 무엇인지 정확지 않아도 "수선화"인듯싶다. 잡부 일당 나간 곳 한편의 남향 화단에 돋은 푸른 구근 몇 덩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돌아왔다. 지난가을, 옥상 어머니 텃밭을 옮겨 대문 입구 오래된 집, 골목에 만들어 놓은 화단. 내 서랍 속에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 이런저런 씨앗들을 재키고, 당신 친정 뒷산의 어느 집에서 캐온 구근화가 처음 자리를 차지했다. 씨앗의 의지를 앞선 뿌리의 운명. 인연도 깨어 있는 것의 몫인듯싶다. 별을 보던 곳. "막걸리 한잔하고 가지?" 잡부 일당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작업 완료 알려줄 겸 시공주가 운영하는 업장에 덩달아 들어섰다. 저녁을 권했지만, 점심으로 먹은 짬뽕이 어찌나 짜 sbs1.. 2021. 3. 14.
복에 겨운 한때 낡은 운동화를 챙겨 신고 집을 나서 천변 길을 따라 한 15분쯤 걸었을까? 막 도심을 벗어났을 때 울리는 전화. "어디여?" '나, 밖인데 형!' "그래? 어디 멀리여? 태우러 갈게!" 그렇게 마주 앉아 넘긴 낮술. "수욕정(樹欲靜)하나 풍부지(風不止)"라. 술청을 받으면 주술처럼 뇌까리던 시절. 그렇게 366일 말술을 먹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복에 겨운 한때였지 싶다. ★~詩와 音樂~★[ 詩集 『바람 그리기』] 술 / 성봉수 술 / 성봉수 보았느뇨! 이 당당한 귀환을 권태의 손을 잡고 떠난 바다 일탈의 격랑을 헤치고 난 다시 항구에 닻을 내렸다 애초에 목적지 없이 떠난 망망대해, 나의 자아는 침몰하여 천 sbs150127.tistory.com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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