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분이 "돈 모아서 맛있는 거 사달라" 하셨다.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막걸릿잔이야 흔쾌히 건넬 수 있는 형편이다만, 내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요구받기는 처음이니 참 색다른 경험이다.
내 아킬레스건은 돈이다.
돈과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 어깨부터 오그라든다. 그러니, 누군가 농으로 던지는 말에도 감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 쉬운 말로, "그까짓 돈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라고 말을 하고, 나 자신도 '내가 가진 돈의 능력에 맞춰 살면 되는 일'이라고 자위하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주머니에서 먼지가 폴폴 날리면,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챙겨야 할 일가친척의 대소사에 마음의 크기에 비례해 정을 나누지 못하고 형편의 손가락부터 꼽아 봐야 하니, 이거야말로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 하는 가장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 가난한 주머니가 그런 모든 상황에 워낙 만성이 되고 보니 지금은 뒷짐 지고 한 발짝 물러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살고 있는데, 그러함에도 모든 관계에 될 수 있으면 금전적으로 불필요하게 엮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괜스레 원치 않는 양잿물 먹고 자존심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금전적 호의를 베푸는 인간관계에 얽히지 않도록 말이다.
자기 돈 쓰는 것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 아까운 돈을 써 호의를 베풀 땐 진심이건 아니건 의도이건 아니건 분명 그 사람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반대급부가 눈곱만큼이라도 있기 때문이거나, 베푸는 호의로 인해 자기 스스로 상쇄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텐데...
몇 해 전 내게 호의를 베풀었던 어떤 분이, 대화 때마다 자신이 베푼 호의를 내게 되뇐다.
'하... 어쩌란 말인가?'
돈과 관련된 일이라면 기질적으로 예민해지는 내 아킬레스건을 몇 차례 쥐어뜯었다.
그럴 때마다 '똑같이 갚아줘야 하나?'라고 몇 차례 고민도 했었지만, 그런 후엔 내 성격상 그나마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던 관계의 끈을 완전하게 잘라낼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서 선뜻 행동하지 못했다. 내게 나눴던 호의의 진정을 지워버리기 싫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 이후 마음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떼어 놓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100세 시대라고 말들 하니 그 반은 더 산 내가,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돈의 최고 단위가 백만 원이라는 것. 그러니 돈과 관련된 모든 행위에 대해 재주 없는 젬병이 인 것은 분명한듯싶다.
10가지를 다 갖추지 못하는 것이 세상 이치이고, 내가 남보다 모자란 것이 있으면 그만큼은 남에게는 없는 그 무언가를 더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마치 천차만별의 깊이에도 바다의 수평선은 일직선인 것처럼, 인생 총량으로 헤아린다면 더 가진 이도 덜 가진 이도 없이 공평하다는 말이다.
돈 못 버는 데는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난 나.
내가 아무리 통계청 공식 자료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못 버는 가난한 직업, 시인"이라지만, 내게 없는 그 재주 대신 신이 남보다 넘치게 준 그 무엇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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