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瞑眩) 현상.
어쩌면 그것은 명현(瞑眩) 현상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과의 이별의 순간에서 점점 멀어져 가며 한계점까지 팽창된 그리움의 고무줄. 그 한계에 이른 탄성계수가 옥죄는 고통스러운 반발.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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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뵙고 내려온 산 아래.
주차한 곳과 멀지 않은 철 지난 밭둑 너머에 호박 한 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산 아래 마주치는 첫 번째 두둑이니, 냉이가 날 무렵이나 되어야 인적이 닿을 곳입니다.
아마 덤불에 쌓여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수확을 마친 후 가을 끝의 짧은 햇살 속에 혼자 영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이 하루 이틀 전의 일이 아니고, 게다가 이곳이 산중이니 볼 것 없이 얼음 들었을 텐데..."
그러면서,
2 시집 『바람 그리기』에 수록했던 「늙은 호박」과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늙은 호박 / 성봉수
늙은 호박/ 성봉수 정월 천변의 호박 한 덩이 햇살과 바람을 꾀어 웅크리었다 그리움 깊어 눈물에 갑옷 입혀 보듬어 안고 통곡할 내일을 기다렸더니 무된서리 지나 눈발도 쌓여 녹고 인연의 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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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집 『검은 해』 이후 발표했던 시, 「불필요」를 번갈아 떠올렸습니다.
☆~ 불필요 / 성봉수 ~☆
불필요 / 성봉수 불필요가 된 것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밤. 흡사 좁은 울 안에 돌봄 없는 짐승의 배설물 같이 흩어져 불필요가 된 것들. 필요였더라도 널브러짐이 효용적이었는지는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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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너의 필요가 되어주마. 늙은 갑각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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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트렁크에 있던 마대에 담아 온 호박을 거실로 들여 잡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빼기 위해 우선 반으로 갈라보니 예상대로 겉의 반은 얼음이 들었습니다. 속까지 얼어 곯기 전에 가져오기를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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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주걱으로 씨를 바르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껍질 벗긴 반은 토막 내 지퍼백에 나누어 담아 곧장 냉동실에 넣어뒀습니다. 생각날 때, 적량의 덩어리를 꺼내 우유와 소금 가미해 죽을 쒀 먹거나 지난여름 장에서 사다 놓은 강낭콩에 찹쌀가루 풀어 풀대 쒀 먹을 생각입니다.
나머지 길게 썬 반쪽은 세탁소 옷걸이에 우선 걸쳐 두었는데요, 꾸덕꾸덕 오가리 만든 후, 건포도와 콩과 함께 넣어 백설기 떡을 만들어 먹던지(형편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비싼 조청 한 병에 싸구려 잡꿀 조금 섞어 정과로 만들어 먹든지 할 생각입니다.
긁어낸 속에서 씨를 발라내며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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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귀하던 시절. 누군가는 나처럼 이렇게 앉아 흥보가 박 타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 씨들이 금화이기를 소망했을 텐데..."
그러면서 또 생각을 이었습니다.
"그 고단하고 가난하던 민초, 지금의 내가 나을 것 없는 형편이면서 사돈 남 말하듯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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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씨를 한쪽으로 밀쳐두며,
회포대 위에 이렇게 씨를 발라 윗목에 밀쳐두던 할머님.
삼신할머니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나를 부엌에서 뛰어나와 앞치마로 덥썩 받았다던 할머님,
그 잔잔하던 옛사람의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내 양손에,
호박의 상큼한 풋내가 전설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202312052629화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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