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뵙고 내려온 산 아래.
주차한 곳과 멀지 않은 철 지난 밭둑 너머에 호박 한 덩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산 아래 마주치는 첫 번째 두둑이니, 냉이가 날 무렵이나 되어야 인적이 닿을 곳입니다.
아마 덤불에 쌓여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수확을 마친 후 가을 끝의 짧은 햇살 속에 혼자 영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이 하루 이틀 전의 일이 아니고, 게다가 이곳이 산중이니 볼 것 없이 얼음 들었을 텐데..."
그러면서,
2 시집 『바람 그리기』에 수록했던 「늙은 호박」과
3 시집 『검은 해』 이후 발표했던 시, 「불필요」를 번갈아 떠올렸습니다.
"그래, 내가 너의 필요가 되어주마. 늙은 갑각류야..."
차 트렁크에 있던 마대에 담아 온 호박을 거실로 들여 잡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빼기 위해 우선 반으로 갈라보니 예상대로 겉의 반은 얼음이 들었습니다. 속까지 얼어 곯기 전에 가져오기를 잘했습니다.
우선 주걱으로 씨를 바르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껍질 벗긴 반은 토막 내 지퍼백에 나누어 담아 곧장 냉동실에 넣어뒀습니다. 생각날 때, 적량의 덩어리를 꺼내 우유와 소금 가미해 죽을 쒀 먹거나 지난여름 장에서 사다 놓은 강낭콩에 찹쌀가루 풀어 풀대 쒀 먹을 생각입니다.
나머지 길게 썬 반쪽은 세탁소 옷걸이에 우선 걸쳐 두었는데요, 꾸덕꾸덕 오가리 만든 후, 건포도와 콩과 함께 넣어 백설기 떡을 만들어 먹던지(형편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비싼 조청 한 병에 싸구려 잡꿀 조금 섞어 정과로 만들어 먹든지 할 생각입니다.
긁어낸 속에서 씨를 발라내며 생각했습니다.
"먹거리 귀하던 시절. 누군가는 나처럼 이렇게 앉아 흥보가 박 타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 씨들이 금화이기를 소망했을 텐데..."
그러면서 또 생각을 이었습니다.
"그 고단하고 가난하던 민초, 지금의 내가 나을 것 없는 형편이면서 사돈 남 말하듯 하는구나..."
바른 씨를 한쪽으로 밀쳐두며,
회포대 위에 이렇게 씨를 발라 윗목에 밀쳐두던 할머님.
삼신할머니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나를 부엌에서 뛰어나와 앞치마로 덥썩 받았다던 할머님,
그 잔잔하던 옛사람의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내 양손에,
호박의 상큼한 풋내가 전설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202312052629화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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