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와야지... 다녀와야지...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속에 중얼거리는 단풍 구경에 대한 소망.
올해도 변함없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공염불로 그칠 것이 뻔합니다.
잡부 일정이 없는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올해는 꼭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먹어왔던 마음으로야, 어린 내게 어머님께서 선물하셨던 책받침 속의 그 내장산 단풍을 꼭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먼 길 떠난다는 게 여의찮습니다.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근교, 속리산(법주사). 계룡산(동학사, 갑사). 태화산(마곡사)을 놓고 어느 곳이 지금 제일 단풍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춘마곡
추갑사
가을 들판과 나지막한 야산의 정취를 감상하려고 꼬불꼬불한 구도로를 택해 집을 나섰습니다.
갑사 도착 바로 전에 펼쳐지는 은행나무 가로가 장관입니다.
사찰 아래 공용주차장(일일 정액 3,000원/카드 가능)에 주차하고, 3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서울식당'에 들러 도토리묵 무침에 좁쌀 동동주로 워밍업한 후 갑사를 향해 슬슬 발을 옮겼습니다.
오후에 출발한 해 짧은 산이니, 갑사는 내려오는 길에 들리고 일단 용문폭포까지 먼저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평일이었지만 단풍 구경을 오신 친구, 가족, 연인들의 모습이 붐비지 않을 만큼 계셨습니다.
입구에 얼마간 펼쳐진 은행나무 길.
보기는 좋아도 냄새는 아시죠?
이 좋은 가을에 그쯤이야 감수하는 거로 ㅎ
슬슬 단풍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라린 눈 아래 언제나 주눅 드는 곳,
사천왕문을 지나고요...
처음 마음먹은 데로 일단 경내는 강당을 끼고 지나치고요
공우탑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용문폭포 쪽으로 들어섭니다.
등골에 땀이 송송 맺힐 때쯤 용문폭포에 도착해 인증샷 한 장 남기고요.
하산길 산중의 해는 벌써 기울었습니다.
제 뒤로는 오르는 이도 하산하는 이도 없더군요.
숲길을 벗어나 다시 햇살을 안고 갑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삼성각 뒤편 감나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되고 있었고요.
삼성각 뜰에는 지금도 지지 않은 해당화 몇 송이가 있었고요.
대웅전에 들어가 웅장한 삼존불 앞에 궁딩이 쳐들고 넙죽 절도 했고요.
대웅전 앞, 범종루 옆의 강당.
그 뒤편으로 펼쳐지는 계룡산 봉우리가 압권입니다.
마지막 인파들을 따라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아아에 담배 먹으며 잠시 앉았다가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차피 일도 다른 일정도 없는 날이니 잘 다녀왔습니다.
하필 중국발 미세먼지가 가득해서 창문을 열고 달릴 수가 없었고, 먼 풍경이 가을답지 않게 혼탁했고,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한 단풍이 아쉬웠고요...
아마, 빠르면 토(4)요일이나 다음 주 초에는 절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혜로운 가을 앓으시길 빕니다.
2023년 가을 11월 첫날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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