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나 풀리거든 독 뚜껑 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진작에 떨어진 고추장 퍼다 놓는 것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마침 요 며칠, 날이 푹해서 닦아 말려 놓은 고추장 용기 들고 옥상 장독대로 향했겠죠?
'어라?'
작년 내 바람 쐬며 살필 때만 해도 독에 반 이상은 차 있던 고추장이, 그 반의반 정도는 줄어 있습니다.
아무리 단독주택이라 이런저런 이유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야 가끔 있지만, 요즘 세상에 남의 집 고추장 퍼 갈 일은 없는 거 같고, 희한합니다.
색이 검게 변한 것은 둘째 치고, 가져간 스텐 국자로도 뜨기 힘에 부치도록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아무리 찹쌀 부꾸미 만들어 담갔다지만, 그 굳은 정도가 꼭 굳기 직전의 찰흙 같습니다. 색도 그렇고 굳기도 그렇고, 단 몇 개월 만에 이리되었네요.
혼자 살림이라 그간 냉장고에 덜어 놓은 것으로 몇 해를 보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너무 안이했지 싶습니다. 하긴, 고추장 담근 게 어머님 살아 실제 마지막이었으니 8~9년은 묵었습니다. 예전 같으면야 대가족 살림 밑천으로 해마다 담갔으니 굳을 틈이 없었겠지만, 요즘이야 식구가 줄어 당연히 먹는 양도 준 데다가, 마트 가면 손쉽게 접하는 소용량 제품들이 많아 번거롭게 담그는 이도 드물고...
각설하고,
그냥 버리고 마트에서 사 잡수시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데요.
"딱딱해진 고추장 해결 방법" "고추장 묽게 만드는 법" "묵어서 딱딱해진고추장 묽게 만들기" "오래된 고추장 활용법" "검게 변한 고추장" "굳은 고추장 연하게 하는 법" 기타 등등으로 검색해서 제 방에 들리실 정도라면 버리실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나 사연이 있으시리라 짐작합니다.
저 역시 그래서 딱딱하게 굳은 묵은 고추장을 살려보기로 했는데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딱딱하게 굳었다는 건 그만큼 수분이 증발했다는 말이니 수분만 원상 복귀시키면 되는 일입니다.
덜어 온 고추장을 볼에 쏟고요, 정수기 냉수를 농도 보아가며 보태면서 섞어줍니다.
제 경우엔 너무 굳어 거품기(블렌더)로는 불가능해서요, 처음 얼마간은 주걱을 세워 칼질하듯 꾹꾹 눌러 작게 토막 내는 거부터 해야 했습니다. 아, 혹시 몰라 볶은 소금 반 움큼 보탰습니다.
단지 전체라면 모를까, 저처럼 덜어 냉장고에 넣어두실 분이면 이 과정에서 양념(매실액이나 물엿이나 양파 간 것 등등)을 보태 놓으셔도 상관없겠죠. 단, 그렇게 하시려면 소금 간을 더 하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래의 맛(집 맛)'을 좋아하는 식성이라 그냥 물로만 농도 맞춰 뒀습니다.
어떻습니까?
손저울 기가 막히죠?
물로 개고 나니 덜어 온 양이, 용기와 덜어 먹는 용기에 딱 맞습니다.
지금은 앞치마 벗은 지 오래이긴 해도, 제가 쉐프 출신이니 제 포스팅을 신뢰하셔도 된다는 의미로 사족을 달았습니다.
참, 나머지 독에 남은 굳은 고추장은요, 평균 기온이 0℃ 이상 되는 다음 달 초쯤에 정수 끓여 식혀서 남은 고추장을 덮을 정도로 부어 놓았다가, 장이 물 먹고 나면 날 더워지기 전에 풀어 헤쳐 놓을 생각입니다.
기회가 되면,
돌가루처럼 굳은 묵은 된장 독에서 회생시키는 법도 공유하겠습니다.
알뜰 주걱으로 긁고도 남은 볼에 묻은 고추장은, 저녁에 밥 비벼 먹었습니다.ㅋㅋㅋ
※참, 색 변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요. 된장도, 간장도... 햇장 담가 섞는 방법 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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